ITU(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에서 제정된 국제전기통신협약(Radio Regulation; RR) 및 우리나라 전파법 시행령 제3조에서 아마추어무선 업무의 정의를 [금전상의 이익을 위하지 아니하고 개인적인 무선 기술의 흥미에 의하여 행하는 자기 훈련 통신과 기술적 연구의 업무]라고 규정하고 있다.
아마추어무선을 [Amateur Radio], [Ham Radio] 또는 [햄(HAM)]이라고 하며, 아마추어무선을 통하여 무선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아마추어무선사도 일명 [햄(HAM)]이라고 부르고 있다.
아마추어무선이란 과학적인 취미 활동이다. 그래서 일정한 시험 절차를 거쳐 국가로부터 자격증을 획득한 개인 또는 단체가 적법한 기준의 무선설비를 갖추어 놓고, 같은 취미를 가진 세계인들과 전신(모오스) 혹은 음성 등을 통하여 자유롭게 통신을 함으로써, 실험 연구 개척하는 활동을 말한다.
그래서 무선통신이나 무선기술에 흥미를 가진 [햄(HAM)]이라고 부르고 있는 아마추어무선사들은 자기 집의 무선실(SHACK) 또는 차량 등에 무선기기와 안테나를 설치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전세계에 있는 같은 취미(실험 정신)를 가진 동호인과 직접 무선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기술을 교환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전파를 통한 우정을 두텁게 하는 국제적인 활동이다. 그래서 이 [아마추어무선]을 일컬어 취미중의 왕(Hobby's King) 또는 왕의 취미(King's Hobby)라고 하며, 다른 어떤 취미도 따를 수 없는 무한한 매력이 햄의 세계에는 존재하고 있으며, 아마추어무선사들은 전파를 통하여 즐거운 햄 생활을 같이 나누고자 하고 있다.
사용 언어는 주로 영어가 공통 언어로 쓰이고 있지만, 대상 국가에 따라 그 나랏 말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국가 이익에 위배되는 것, 영리적인 것, 어느 특정 종교를 화제로 삼는 것, 미풍양속을 해치는 것 등을 제외하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여 교신을 할 수 있다.
우리들 아마추어무선사, 즉 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를 통하여 동서(東西)로는 아프리카에서 미주 지역까지, 남북(南北)으로는 남극에서 북극까지, 학생, 직장인, 주부, 할아버지, 할머니를 가릴 것 없이 이들 모두가 민간 교류의 주인공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교신을 통하여 친교를 맺게 됨으로써 십년지기(十年知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어 전파를 통한 우정을 나누고 있다. 또한 각기 고유의 자연과 풍토,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고, 우호를 다짐하며 무엇보다도 천재지변과 같은 위급한 현장에서 최후의 통신 수단으로 공공(公共)을 위한 영원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HAM, 그것은 매력 있고 신비한 세계이며, 현존하는 무한의 세계이다.
모든 아마추어무선사는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를 통하여 서로의 우정을 나누고, 무선 기술에 관한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주고받으며, 천재지변이나 국가 비상시에는 스스로의 기술과 장비로써 위급함을 알리고, 이를 구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자연과 풍속 등을 자랑하고 자기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체르노빌]의 악몽을 맨 처음 전세계에 알린 것도 HAM이었으며, 88년도 서울 올림픽 때 국외적인 홍보 활동, 성수대교 붕괴, 대구 가스폭발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에서 각자의 통신 장비로 재난 구조 활동을 하였으며, 햄으로서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헌신적인 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HAM의 숫자는 300만 정도이며, 북한을 제외한 전세계가 이것을 즐기고 있다. HAM 인구가 제일 많은 나라는 약 150만국을 보유한 나라도 있으며, 불과 한, 둘 혹은 수명의 HAM이 있는 나라도 있는데, 현재 우리 나라는 약 5만의 아마추어무선국과 10만의 아마추어무선사 자격증을 소지한 무선동호인을 가진 잠재력으로 확고한 HAM국가로 성장하고 있다.
이태리 태생의 [마르코니]는 [리보르노 공대]를 졸업, 1894년 [H. R. Hertz]가 사망하자 헤르츠파(波)의 응용에 착안하여, 부친 집에서 무선전신의 실험을 시작하였다. 1896년에는 무선전신에 관한 영국 특허를 취득, 런던 체신청에서 최초의 공개실험에 성공하였으며, 1897년 런던에서 무선전신회사를 창립하고, 도버해협에서 영국∼프랑스의 통신을 실현시켰다. 그 후 대서양을 사이에 둔 송 수신은 1901년 12월 12일 [콘월주(州) 폴듀]와 [뉴펀들란드]의 [세인트 존즈] 사이에서 역사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무선전신은 해저 전신 사업계로부터 심한 저항을 받았으나 대(對) 선박 또는 선박 대 선박통신의 독무대가 되었다. 마르코니는 그 밖에도 단일 안테나에 의한 동조식(同調式) 및 다중 전신동조의 방식(1901), 자기 검파기(磁氣檢波器)(1902), 수평지향성 안테나(1905) 등을 발명하였으며, 그 후로는 그의 회사에 [J. A. 플레밍]을 비롯하여 많은 과학자들을 고문으로 맞아들여 통신거리의 연장, 동조(同調)의 개선 및 공전(空電) 혼신의 제거에 주력하였다. 1909년 [K. F. 브라운]과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으며, 또한 1919년에는 파리 평화회의의 이태리 전권 대표가 되었다.
마르코니에 의해 무선통신이 발명되자, 전선(電線) 없이 통신을 할 수 있는 이 무선통신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그리하여 당시 전기나 통신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무선통신의 실험을 순수한 개인적인 흥미로 손대기 시작한 것이 아마추어무선의 시초였다. G2HA 라는 무선국을 운용하는 영국의 [맥슨]씨는 1899년부터 아마추어무선을 시작하였다고 하니, 결국 아마추어무선의 시조(始祖)는 마르코니 자신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시작된 아마추어무선은 이태리에서 영국으로, 다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퍼지기 시작하였지만, 그 당시만 해도 무선통신이란 발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별로 이용되지 못하였고 그저 아마추어들의 흥미로운 연구의 대상일 뿐이었다. 모든 상업무선 통신보다 앞서서 시작된 아마추어무선의 초기에는 그 호출부호도 제멋대로 부여하였으며, 또한 이들을 규제하는 법규도 없었으므로 한가한 시기였다. 이런 식으로 십여 년이 흘렀다. 그 동안 좀 더 능률적인 통신이 가능하도록 열심히 연구를 거듭한 햄들과 학자들의 힘으로 무선통신은 차차 실용성을 띠게 되었고 상업국이 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진공관도 없이 수 kW의 거대한 발전기를 돌려가며 불꽃방전을 시켜 통신을 하던 초기의 무선통신에는 파장이 수백 미터 내지 수천 미터나 되는 장파(長波)를 쓰고 있었다. 당시의 이론으로는 단파(短波)란 겨우 옆집정도나 통화할 수 있을 것으로 알고 있었으며, 단파라야 원거리 통신이 된다는 오늘날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이론이 통용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장파를 사용하면서 무선국의 수가 하나 둘씩 늘어가자 무선국 상호간의 혼신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물론 시설도 원시적(原始的)이었으므로 이와 같은 혼신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였다. 그래서 무법의 전파를 통제할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1912년 무선통신이 가장 활발하였던 미국은 세계 최초의 전파법을 제정하였다. 그리하여 아마추어무선사들은 파장 200m 이하의 단파대로 쫓겨나고 말았으나, 아마추어무선사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단파대를 개척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단파대에서 미국 햄들의 피땀어린 실험이 시작되었으며, 결국 단파대를 이용한 통신의 통달거리는 곳곳에서 신기록이 수립되었다.
1914년 수천 명에 이르렀던 미국의 햄들은 고(故) [맥심]씨의 제창으로 미국아마추어무선연맹인 ARRL(American Radio Relay League)을 조직하고 조직적인 실험을 시작하였으나, 1917년의 제 1차 세계대전으로 모든 아마추어무선국은 폐국 명령을 받아 아마추어무선 활동이 중지되고 말았다. 당시 약 6천명에 이르렀던 ARRL의 회원 중 약 4천 여명이 무선통신의 경험을 살려 군대에 동원되었고, 물론 유럽에서도 많은 햄들이 군에 동원되었으며, 따라서 아마추어무선 활동은 일단 세계대전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1919년 세계대전이 끝나자 군대에서 더욱 더 기술을 연마한 햄들은 전쟁 후에 방출된 많은 무선통신기의 재료들을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1921년 12월 ARRL에서는 전파의 대서양 횡단 통신을 실험하기 위하여, 회원 중 가장 우수한 햄인 2ZE 에게 그 당시로서는 가장 고성능인 수신기를 주어 유럽으로 파견하고 미국 햄들의 전파를 수신하게 하였다. 그 결과 약 30국의 미국 햄들의 신호를 수신할 수 있었으며, 이듬해인 1922년에는 300여의 미국 햄들의 신호를 수신할 수가 있었다. 또한 미국에서도 프랑스와 영국 햄의 신호를 수신하여 일방향(一方向) 통신은 성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목표는 완전한 교신이었지만 그 당시의 기계나 기술로써는 한계가 있었다.
1923년 11월 7일, 드디어 미국의 1MO(W9UZ) 와 1XAM(K6BJ; 1964. 11. 작고)은 프랑스의 8AB 2)와 파장 20m로 교신하는데 성공, 단파대에서 대서양 횡단 통신을 하여 당시의 무선계를 놀라게 하였으며, 오늘과 같은 단파 만능시대의 막을 올리게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햄들의 손으로 막을 올린 단파통신은 횟수가 거듭됨에 따라 오히려 파장이 길면 길수록 원거리통신이 잘 된다는 결과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여러 학자들이 연구한 끝에 드디어 [케네리]와 [헤비사이드]에 의하여 [케네리-헤비사이드층]이라고 부르는 전리층(電離層, 이온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단파통신에 대한 이론도 체계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소전력(小電力)으로 원거리통신이 잘 되는 단파대로 많은 상업국들이 옮겨오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이 순전히 햄들의 손으로 개척된 단파대가 이제는 무선통신의 대명사가 되어 [무선통신]하면 [단파]라고 상식화되고 말았지만, 이것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햄들이, 이론을 제쳐놓고 서로 도와 가며 실험으로 이룩해 놓은 빛나는 기록인 것이었다.
이러한 단파대의 성공으로 원거리교신이 쉽게 되자, 전 세계의 햄들의 수는 부쩍 늘어났고, 드디어 1925년에는 그 때까지 각 나라별로 조직되었던 아마추어무선 단체의 통합체인 국제 아마추어무선연합인 IARU(International Amateur Radio Union)이 조직되어, 초대 회장에는 ARRL의 회장이었던 W1AW(맥심) 씨가 겸임하게 되었다.
이렇게 전파(傳播)되던 아마추어무선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세계 각국은 아마추어무선의 활동을 중지시키고 말았으며, 대부분의 햄들은 또 다시 군이나 연구소로 불려갔다. 그리하여 많은 햄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그들이 평소에 연마한 기술을 봉사하고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고 Silent Key(햄의 사망)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패전국 몇 나라를 제외한 전 세계의 아마추어무선활동이 재개(再開)되었으며, 패전국의 재개는 약간 늦어져서 1948년에 독일에 이어 이탈리아 그리고 1951년에 일본이 아마추어무선의 활동을 허가함으로써 패전국의 아마추어무선 개방은 실현되었다. 그러나 전승국이었던 자유중국은 중공과의 싸움 때문에 1964년에 비로소 허가되었다.
1.자신의 관심 여하에 따라서 여러 방면으로 전자통신공학에 대한 지식이 늘게 되며,
2. 교신을 통하여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게 됨으로써 다방면으로 친구들이 생겨서 내성적인 사람도 많은 상대와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하여 외향적이며 적극적인 성격으로 전환될 수 있고, 따라서 매사에 자신감이 생긴다.
3. 궁금했던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신선하고 잔잔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고
4. 사무소나 지부 연맹 등에서의 봉사를 통하여 봉사 정신을 배우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5. 주부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동시에 전파를 통하여 세계를 누비는 환상적인 취미생활이며, 때로는 들과 산으로 뛰어다니며 전파의 방향을 탐지하는 ARDF대회에도 참여할 수 있다.
6. 이 밖에도 외국어에 관심을 갖게되어 외국어 실력이 향상된다든지, 고령(高齡)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어도 안방에서 무선장비와 더불어 외롭지 않을 수 있는 취미생활인 점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취미이다.
아마추어무선을 즐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만드는 일, 실험하는 일, 말하는 것, 듣는 것, 경기하는 것 등의 여러 가지가 있으나 여기에서는 그 대표적인 몇 가지만 소개한다.
가까이 있는 친구나 동료들과 함께 이런 저런 생활 이야기나 취미 생활에 대하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을 말하며, 아마추어무선의 선배들과 만난다면 기술적인 이야기나 아마추어무선의 옛날 이야기도 흥미 있는 화제가 될 수 있다.
지상파로는 교신이 되지 않는 국내의 멀리 떨어져 있는 무선국과는 전리층의 반사를 이용한 교신이 가능하며, 계절이나 시간대에 따라 전국 방방곡곡과의 교신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DX란 원거리와의 교신을 의미하지만, 해외(海外)의 무선국과의 교신을 말할 때 사용되고 있다. 언어(외국어) 문제로 고민할 수도 있으나 아마추어무선사들간에 사용하는 세계 공통의 간단한 표현만으로도 외국과의 교신을 즐길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교신을 하고 나면 QSL 카드를 주고받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아마추어무선사로서의 경륜이 쌓이게 되면 상당수의 QSL 카드가 모이게 되는데, 이 카드로써 일정한 조건을 갖추면 AWARD(상장)를 신청하여 받을 수 있다. 목표를 가지고 아마추어무선을 오래 동안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정해진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무선국과 교신하는 것을 말하는데, 전파를 이용한 경기대회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교신한 무선국뿐만 아니라, 많은 지역 또는 국가 등의 숫자에 따라 득점이 증가하는 등의 여러 가지 규정이 있어, 교신 기술의 향상을 도모하는 의미도 있다.
전파가 발견되면서 각종모드에 의한 통신방식 중 가장 낮은 전력으로 원거리 통신이 가능한 것이 CW(Continuous Wave)에 의한 통신방식이 있다. 미국의 화가인 모르스(Samuel Finley Breeze Morse 1791∼1872)에 의해 개발된 부호가 전신통신에 있어 그동안 통신수단의 총애를 받아오면서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우리 아마추어무선에서는 태동을 거쳐오는 동안 주파수대를 개척하고 전파의 질을 탐구하는 등 세계 속의 HAM들은 오늘도 쉼 없는 도전과 연구심에 몰두하고 있다. 또한 무선통신의 3대원칙 신속. 정확. 안전에 기여하고 어느 정도의 통신내용을 해독 지연시키는 비화성을 갖춘 통신방식인 전신술은 기능적 노력이 필요로 하는 다소 고급스러운 취미로 아마추어무선통신에서 존경받을 만한 통신모드가 아닌가 본다.
리피터(중계기)라고 하는 자동 중계국이 전국에 고루 개설되어 있어, 휴대용 무선기기 등 저출력의 송수신기로도 어느 정도의 장거리 교신을 즐길 수 있다. 정해진 동일(同一) 주파수를 많은 사람이 사용하게 되므로 리피터를 이용한 교신은 가능한 한 간단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전파 발신기를 산이나 들판의 숲속에 숨겨두고 수신가를 이용하여 그 발신지를 찾아내는 옥외 경기이다. 최근에는 국제적인 규칙(rule)을 정하여, 자동 발신기 5개를 숨겨두고 차례로 이것을 찾아내는 경기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국내는 물론 국제 경기로 발전하고 있다.
아마추어무선용의 인공위성을 이용한 우주통신이나 라디오 텔레타이프(RTTY), 정지화상(停止 畵像; SSTV), 아마추어 텔레비전(ATV), Data 통신(packet, AMTOR 등), 무선 팩시밀리 (MINI FAX) 등의 화상통신 등이 있다. 마이크를 이용한 무선전화뿐만 아니라 고도의 기술을 응용한 통신도 즐길 수 있다.
자동차, 선박, 항공기, 우주선 등에 무선기기를 장착하여 임시로 이동 중에 운용하는 이동무선국(mobile station)을 비롯하여, 휴대용 무선기기를 이용하여 야산이나 해변에 안테나를 가설하거나, 거리를 이동 중에 운용하는 것을 말한다.